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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항응고제 '삭감' 폭풍…"무늬만 보험"
의학계 "효과 알지만 처방 두려워" 고충 호소…급여기준 무용론도 제기
[ 2013년 12월 01일 20시 00분 ]

[기획]“10회 처방하면 8번 삭감되는데 누가 처방하겠어요.” 와파린 대비 뛰어난 효능으로 시장몰이를 기대했던 차세대 항응고제들이 실제 의료현장에서는 맥을 못추고 있다. 애매한 급여기준에 관용 없는 무작위 ‘삭감’ 때문이다. 결국 의료현장에서는 삭감 걱정이 덜 한 와파린에 집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좋다는 신약이 삭감 폭풍에 휘말리고 있는데, 이를 무작정 처방하기엔 요즘 같은 병원경영 환경 속에서 ‘무리수’라는 설명이다. 분명 이 차세대 약들이 정부로부터 급여 적용을 받았지만 그 기준을 놓고 봤을 때 겉모습만 ‘급여약’이라는 게 의료계 시각이다. 데일리메디는 이러한 현상을 진단하고 직접 만난 의료계 인사들의 의견을 종합해 봤다.[편집자주]

 

지난 2009년부터 출시돼온 자렐토(바이엘), 프라닥사(베링거인겔하임, 2011년 2월 허가), 엘리퀴스(BMS제약-화이자, 2011년 11월 허가)는 와파린 보다 무려 60년 뒤 시장에 나온 약제들이다.

 

이 차세대 약제들의 효과는 예상이 가능할 정도로 와파린과 긴 출시 간격을 보이고 있다. 임상데이터에서도 이 3개 제품 모두 와파린 대비 색전증 예방 관련 주요 출혈정도 등에서 보다 좋은 효과를 나타냈다.

 

하지만 실상 이 약들의 처방은 꺼려진다. 정부가 세운 급여기준을 살펴보면 비판막성 심방세동 환자 중 고위험군에서 와파린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 급여 적용이 이뤄진다.

 

즉, 와파린을 고용량 사용 등 적용 사례가 없을 경우 아무리 좋은 약제들을 초 치료에 사용한들 삭감이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와파린 사용으로 머리카락이 빠지는 부작용이 발생해 한 달간 다른 약으로 바꿔 처방했더니 더 이상 탈모가 진행하지 않았는데, 정부 측이 “왜 와파린 용량을 올리지 않았냐”면서 삭감을 단행했다는 한 대학병원 교수의 실화도 그 심각성을 알린다.

 

자렐토, 프라닥사, 엘리퀴스는 모두 공통적으로 ‘비판막성 심방세동 환자에서 뇌졸중 및 전신 색전증의 위험 감소’ 적응증을 갖고 있다.

 

이는 어려운 국내 건강보험재정 상황에서 비롯된다는 설명이다. 바로 약가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이들 약제는 와파린보다 약가가 훨씬 높다. 때문에 처방량이 늘수록 건보재정에 무리가 생길 수 있어 이러한 까다로운 급여기준이 생길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신약이기 때문에 처방수가 늘어날 것을 예상한 점이 반영된 셈이다.

 

때문에 아무리 좋은 임상 데이터가 나오더라도 이들 약제가 갖는 시장 파이는 오히려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서로의 경쟁이 무색할 정도”라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대한심장학회 측은 정부의 이 같은 행보에 대해 질타의 목소리를 날렸다.

 

학회 김병옥 보험이사는 “항상 문제는 정부가 급여를 적용시키면서 그 기준을 까다롭게 만들고 결국 삭감을 진행한다는 데 있다. 결국 그 약을 못 쓰게 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피력했다.
 
김 이사는 이어 “병원 경영자인 의사들 입장에서 삭감은 굉장히 예민한 사안이다. 삭감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서 과연 누가 그 약을 쓰겠나. 이렇게 되면 좋은 약은 유명무실해질 수 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차세대 항응고제 급여 기준 관련한 논의 과정에서 심평원 측에 전달된 의료계 의견도 결국 반영이 안됐다는 전언이다.

 

김 이사는 “심평원 자문회의에 의료계 부정맥연구회 보험담당 의사가 참석토록 했다. 이들 약제의 급여기준 자체가 불완전해 문제제기를 했다. 하지만 아직 해결이 안 됐다. 선진국은 이미 이 차세대 약제들을 1차 약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 현재로선 우리와 많이 다른 상황”이라고 밝혔다.

 

한양대 의대 박환철 교수 역시 비슷한 논리를 펼쳤다. 박 교수는 “국내 보험인정 기준이 까다롭다. 의료계 입장에서 아직 선뜻 이들 약 처방을 내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물론 정부가 보험 기준을 정해줬지만 애매하다. 대학병원이야 삭감을 단행해서라도 사용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개원의는 현재 처방이 거의 전무하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이어 “예컨대, 엘리퀴스의 경우 노환기 관련 여러 임상결과도 발표됐고 다른 약제나 음식과의 상호작용이 적다는 점과 신장배설이 아니라는 특장점을 지녔지만 무슨 소용이 있는가. 주변 여러 임상의들을 보더라도 이러한 차세대 약들을 많이 처방하고 싶어 한다. 앞으로 이러한 급여 기준과 관련해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문제 제기했다.

 

연세대 의대 김중선 교수는 정부와 병원, 환자 사이의 미묘한 상황을 짚었다. 김 교수는 “병원 입장에선 이러한 약제들을 사용하다가 삭감되면 와파린 처방으로 바꿔야 한다. 환자는 ‘왜 약을 바꾸냐’고 하고 난감한 상황이다. 무조건 병원에서 떠안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이라고 전했다.

 

김 교수는 이어 “와파린의 가장 큰 문제는 처방을 하더라도 제대로 약을 복용하는 환자가 60%도 안 되는 상황에서, INR(항응고 수치)이 유지되는 점도 20%가 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 뒤 다시 다른 약을 처방해야하는 비용이 들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처음부터 차세대 항응고제를 사용하는 게 나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일침했다.

 

김중선 교수는 “지금의 항응고제 급여기준 자체가 사실 말이 안 된다. 삭감이 계속 발생하는 테두리를 만들어놨는데 어떤 의사가 처방하겠느냐. 그렇다고 정부 예산을 무조건 올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영성기자 lys@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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