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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특집]박근혜 대통령과 외상의 인연이 기묘하다. 박 대통령 삶 속에서 외상은 그가 원하든, 원치 않든 인생에 큰 변곡점을 만들었다. 겉으로 상처가 보이는 외상의 특성 탓에 급격한 굴곡에 찍힌 빨간 점은 우리 모두를 집중시켰다. 그때마다 그는 의연하게, 또는 정치적으로 슬기롭게 쏟아지는 시선을 감당했다. 총상으로 부모를 여의었을 때, 선거유세 중 커터칼 테러를 당했을 때, 대선을 앞두고 측근 보좌관을 잃었을 때 진폭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그의 심정은 요동치고 있었다. 또 그렇게 박근혜 대통령과 외상은 아슬아슬하게 끈을 이어가고 있다.
총상으로 국모(國母) 잃은 나라 ‘대한민국’
박근혜 대통령은 부모를 총상으로 잃었다.
1974년 8월 15일 오전 10시. 한 발의 총성이 국립극장 강당을 싸늘하게 휘감았다. 그곳에서는 광복 29년을 기념해 박정희 대통령이 단상에 올라 연설 중이었다. 이어 한 남자가 단상을 향해 연달아 방아쇠를 당겼다.
연설하던 박 대통령은 급히 단상 아래로 몸을 피했고, 이내 괴한도 경호원에 제압당했다. 사태가 진정 된 듯 보였으나 단상 위 의자에 앉아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의 몸이 고꾸라지고 있었다. 이 모습은 TV로 전국에 생중계됐다.
오전 10시 23분 총탄에 맞은 육 여사는 10시 32분 원남동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다. 응급 조치와 뇌 수술을 위해 머리카락을 깎는 데 20여 분이 걸렸고, 11시쯤 신경외과 과장 심보성 교수가 메스를 들었다고 전해진다.
사고 발생 직후 한 시간 이내에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소위 ‘골든타임’이 지켜진 것이다. 수술은 오후 4시20분까지 5시간 넘게 이어졌다. 하지만 육 여사는 끝내 숨을 거뒀다.
당시 VIP병동 수간호사였던 이애주 전 새누리당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육 여사의 상태를 이 같이 회상했다.
그는 “당시 머리를 관통한 총알이 뇌 속에서 돌았다. 그 과정에서 오른쪽 뇌의 가장 큰 혈관인 정맥 혈관을 건드렸다. 저격 30분 만에 수술이 시작됐지만 이미 머리 속에 피가 차 있어 수술을 시작하자마자 피가 뿜어져 나왔다.
당시 집도의였던 심 교수는 수술 다음날 우리에게 ‘꼭 살렸어야 했는데… 5㎜만 비켜 갔어도…”라고 침통해했다. 그게 전부였다. 심 교수는 정년퇴직 후 곧 돌아가셨는데 줄곧 말을 아낀 것으로 전해진다.
박 대통령은 육영수 여사가 서거한 후 유학생활을 접고 본격적으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했다. 박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그에 대해 “알게 모르게 나는 아버지로부터 돈으로 살 수 없는 귀한 과외수업을 받고 있었다”고 평했다.
커터칼 상처, 대선주자로 발돋음 계기
커터칼 테러로 인한 박근혜 대통령 얼굴의 자상은 분명 불행한 사건이다. 하지만 의연한 대처에 따른 지도자로서의 면모는 대권주자의 자질을 입증시킨 정치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계기가 됐다.
2006년 5.31 지방선거 유세가 한창일 때 당시 한나라당(현재 새누리당)을 이끌던 박 대통령은 오후 7시 20분경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신촌 현대백화점 앞 유세장을 찾았다.
단상에 오르려던 순간 당시 50세였던 지 모 씨는 미리 준비해뒀던 문구용 커터칼로 박 대통령의 오른쪽 뺨을 힘껏 그었다.
박 대통령은 곧바로 인근에 있는 세브란스병원으로 향했다. 당시 병원 측은 “오른쪽 귀밑에서부터 아래턱 부위까지 길이 11cm, 깊이 1∼3cm 정도로 베였다”고 진단했다.
이어 상처가 0.5㎝만 깊었더라면 박 대표의 안면근육이 완전 마비되거나, 동맥이 절단돼 즉사하는 아주 위험한 상황이 될 뻔했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은 당일 8시 20분부터 60바늘을 꿰매며 3시간여에 걸친 수술을 받았다. 그는 8일 동안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은 뒤 퇴원했다.
박 대통령 피습사건은 당시 지방선거의 판세를 가르는 핵심변수로 떠올랐다.
“대전은요?” 2006년 5.31 지방선거를 대변해주는 한 마디다. 봉합수술을 마치고 깨어난 박 대통령은 이 한 마디로 큰 격차로 지고 있던 대전시장 선거를 역전시켰다. 박 대통령이 퇴원 후 테러 당시의 옷을 입고 곧장 대전을 전격 방문한 것도 주효했다.
박 대통령은 그때 “저의 피와 상처로 모든 갈등과 상처가 봉합되고, 하나 된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며 “무사히 병원을 걸어 나가는 것은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남은 인생은 덤이라 생각하고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불운한 사고를 정치적 기회로 활용하며 국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낸 좋은 예다. 실제 박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피습 사건 당일을 “다시 태어난 날”로 규정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이미 2004년 총선과 각종 재보궐 선거에서 승리하며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칭을 얻고 있었다. 이에 더해 전국 단위로 벌어진 2006년 지방선거에서의 한나라당 ‘완승’은 당 대표였던 그의 영향력을 입증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5.31 지방선거 승리 이후 대통령 후보 선호도에서 1위를 차지하며 확고한 대권주자로서의 가도를 달렸다.
이후 그는 2012년 제 18대 대선 때 TV 광고에서 커터칼 테러 흉터를 부각했다. ‘박근혜의 상처’를 ‘국민의 상처’로 연결해 공감대롤 형성하고 “남은 인생 국민들의 상처를 보듬으며 살아가겠다고 결심했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결국 그는 18대 대통령이 됐다.
2012년 12월 대선 기간중 교통사고로 핵심 측근 사망
교통사고는 대표적인 외상의 원인이다. 하지만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박 대통령 보좌관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건은 그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그가 보좌그룹 4인 중 1명으로 대선 후보자의 핵심 측근이고 박 대통령을 돕다 사고를 당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2012년 12월 2일 이춘상(47) 보좌관 일행이 탄 승합차가 강원지역 유세 수행을 위해 이동하던 중 교통사고가 났다. 사고 장소는 강원 홍천군 두촌면 자은리 철정검문소 인근 44번 국도.
이 보좌관이 탄 카니발 승합차가 뒤따르던 동료 보좌관 차량인 카니발 승합차와 추돌하면서 도로 우측 경계석과 과속카메라 기둥 전주를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이 보좌관이 숨지고 함께 타고 있던 김우동 홍보팀장이 중태에 빠지는 등 일행 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대부분 인근 홍천아산병원 등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박 대통령은 사고 직후 이 병원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 중 사고 직후 의식을 잃은 김 팀장은 오후 2시 40분께 원주 성지병원으로 옮겨져 1차 응급수술을 받고 원주기독병원으로 긴급 후송, 오후 3시 50분께 2차 뇌수술을 받았다. 한 의료진은 김 홍보팀장에 대해 "매우 위중한 상태다. 장담할 수 없으나 수술이 오래 걸릴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현장에서 사망한 이 보좌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1998년 정치권에 입문했을 때부터 줄곧 최측근에서 보좌한 4인 중 1명이다. 대선 경선 및 본선 캠프에서 홍보팀장 등 중추적 역할을 맡아왔다.
그는 평소 박 후보를 현장 수행하지 않았다. 이날은 박 후보의 연설에서 보일 메시지 준비 차원에서 유세에 함께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 2017년, 예방가능 사망률 20% 달성”
박 대통령과 외상과의 끈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13년 2월 응급의료 전반에 대한 중장기 계획인 ‘응급의료기본계획’에서 2017년 중증외상환자 예방가능사망률을 20% 미만으로 줄이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기존 계획인 2020년 목표가 2017년까지 달성해야 할 목표로 변동된 것이다. 2017년은 박근혜 정부 임기 마지막인 5년차가 되는 해다. 그 이유에 대해 복지부는 “공격적으로 목표를 설정한 것”이라고 답했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특히 중증외상센터 설립 첫발을 내딛었던 ‘응급의료에관한법률’ 제정에 참여했던 당시 주승용 의원실 박철민 보좌관은 우리나라 외상에 대해 다룬 <치료받지 못한 죽음>이란 책에서 이 같은 계획 변동을 “정책 집행 기관에 만연한 무책임과 보신주의”라고 일갈했다.
박근혜 정부가 ‘응급의료기본계획’을 임기 내에 달성하기 위해 진지한 고민 없이 계획을 변경한 것이란 비판이다.
그는 책에서 “애초 정부 예산이 한정된 탓에 사업 첫 해부터 전국에 17개 외상센터를 동시 지정하는 것은 무리였다. 따라서 3년 동안 순차적으로 외상센터를 지정하기로 했다. 각 외상센터가 자리를 잡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을 계산해 나온 것이 2020년이라는 것이다.
또한 외상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의사나 간호사 등의 전문인력을 최소한 수준으로 육성하는 데만도 최소 5년이 필요하다는 계산이었다”고 회고했다.
이 같은 계획 변경에 박 대통령의 의중이 얼마나 반영됐는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현재 계획대로라면 우리나라 외상의료서비스의 질을 한층 높여줄 권역별외상중증센터가 박 대통령 임기 내 자리한다는 것이다.
그간 여러 형태의 외상은 박 대통령의 정치인생 곳곳에 크고 작은 영향을 줬다. 박 대통령이 가진 상징성 덕에, 이는 많은 이들에게 다양한 시사점을 안겼다.
혹자는 육영수 여사의 총상이 우리나라 외상체계 기반을 닦는 계기가 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영부인을 총상으로 잃고도 외상의료에 대한 중요성을 각성하지 못한 것에 대한 푸념이다.
또 다른 이는 지역 병원과 권역외상센터 간 연계 미비로 박 대통령 보좌진의 치료가 더 적절하게 이뤄지지 못한 것을 지적하기도 한다. 골든타임이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의료진으로서의 안타까움의 표현이다.
박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 이미 모두 지정된 17개 권역별 중증외상센터가 예방가능 사망률 20%를 향해 달린다. 박 대통령은 외상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2017년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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