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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만명. 국민의 45명 중 1명은 암환자이거나 암환자였다. 질병의 패러다임은 병원들 지형도 역시 크게 변화시켰다.
암환자 유치를 위한 암병원이 홍수를 이루고, 그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 병원은 2류, 3류 취급을 받는 염세적 분위기까지 형성되고 있다. 늘 그래왔듯 서울대를 비롯한 빅5 병원들이 주도하고 타 병원들이 쫓는 형국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대형병원들의 암병원 경쟁 폐해를 지적하고 있다. 암병원 유무가 명품병원 척도가 되는 현실을 개탄하고, 무분별한 암병원 설립은 결국 환자들의 경제적 부담만 가중시킬 것이란 우려가 팽배하다.
12개 병상. 이른바 빅5 병원의 암병원 병상수만 따져도 서울아산병원 770병상, 삼성서울병원 655병상, 연세암병원 510병상, 서울성모병원 475병상, 서울대병원 202병상 등 2612병상에 달한다.
여기에 국립암센터(550병상), 고대의료원(300병상) 등을 합하면 3500병상에 육박하고, 경희대병원, 단국대병원, 원광대병원 등 암병원 설립을 추진 중인 곳까지 가세할 경우 그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다.
이들 대형병원의 암병원 경쟁 기저는 ‘수입’으로 귀결된다. 여타 진료 분야 대비 암 수익률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대형병원들이 다른 센터와 동격으로 운영하던 암센터를 암병원으로 승격시키며 규모와 위상을 확대시키는 이유이기도 하다.
환자 추이 역시 암병원 홍수의 원인을 방증해 주고 있다. 201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누적 암 등록 인원은 128만명이다. 2012년 한 해에만 24만8555명이 암환자로 등록했다.
건강보험을 적용받는 전체 암환자 수는 2003년 31만4652명에서 2012년 103만4948명으로 10년 간 3배 이상 증가했다.
암환자 수 증가에 따른 진료비 규모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특히 암에 대한 건강보험 보장성이 강화되면서 암환자 급여비 지출액이 연간 3조원에 육박하는 상황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암환자 분석결과' 자료에 따르면 건강보험 대상 암환자 보험재정 지출은 2조9269억원으로, 전체 급여비(28조1512억원)의 10.4%를 차지했다.
이는 암환자 급여비가 전년도(2조5934억원)와 비교해서 12.4% 증가한 것으로, 지난 2003년 급여비(8096억원)에 비해 무려 3.6배나 늘었다.
이처럼 암환자에 대한 급여비 지출이 급증하는 원인은 신규 암환자 증가와 중증질환에 대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 만큼 암으로 돈이 몰리고 있고, 수익을 쫓는 병원들 입장에서는 암치료에 집중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얘기다.
대형병원들이 암병원에 쏟는 기대는 투자비용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지난 2008년 아시아 최대 암센터를 기치로 내걸었던 삼성서울병원의 경우 무려 3000억원을 투입했고, 올해 5월 개원한 연세암병원 역시 2500억원을 쏟아 부었다.
지난해 문을 연 분당서울대병원 암병원은 공사비만 1050억원이 들어갔고, 현재 암병원을 건립 중인 병원들도 1000억원 안팎의 비용을 투입할 예정이다.
암(癌)을 둘러싼 대형병원들의 경쟁이 과열 양상을 보이면서 우려감 역시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우선 전문가들은 “암병원 경쟁은 결국 환자들의 의료비 증가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암병원의 경우 막대한 장비는 물론 다양한 보조인력이 필요한 만큼 비용 부담이 커지고 이는 곧 환자들에게 전가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대형병원들의 암병원 경쟁은 결국 환자부담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며 “생명과 돈을 바꿀 수 있는 환자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병원들은 일정 부분 수긍했다. A대학병원 관계자는 “고가 장비를 구입하고 진단시스템을 확대하려면 적잖은 비용과 인력이 투입돼야 한다”며 “병원 입장에서도 상당한 부담”이라고 말했다.
B대학병원 관계자는 “병원으로서는 투자비 회수를 고민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렇다고 환자들에게 무조건 전가할 수 있다는 인식은 곤란하다”고 부인했다.
암병원 과열 경쟁에 대한 우려는 수도권 환자 쏠림 심화와 의료자원 수급 문제로도 이어진다.
가뜩이나 지방환자들의 수도권 대형병원 선호도가 높은 상황에서 암병원 홍수는 자칫 환자 쏠림을 심화시키고, 지방 병원들의 경영난을 가중시킬 것이란 지적이다.
지방의 C대학병원 교수는 “빅5 병원들이 블랙홀처럼 환자들을 빨아들이면서 의료계 생태를 망가뜨리고 있다”며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지방병원들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D대학병원 교수는 “정부가 암환자 수도권 쏠림을 방지하기 위해 지역암센터를 운영 중에 있지만 서울 대형병원들의 암병원 경쟁 앞에 속수무책인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암병원 과당 경쟁에 따른 의료자원 수급 문제 역시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암환자와 암병원 간 수요와 공급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유근영 교수는 “병원들이 당장의 수익을 위해 암병원 경쟁에 뛰어들고 있지만 멀리 내다 보면 틀린 판단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당분간은 암환자가 계속 증가해 암병원들이 수입을 올릴 수 있겠지만 이 같은 상황이 장기적으로 지속될지는 미지수라는 것이다.
유근영 교수는 “암환자 발생 추이를 보면 증가세가 점차 둔화되고 있다”며 “시점을 예단할 수는 없지만 분명 암병상의 과잉공급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편일률 시스템 탈피 등 해법 모색 절실"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암병원들이 현재 천편일률적인 시스템을 탈피, 보다 세분화된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암병원들은 하나 같이 의료진 협진 및 최첨단 시설, 원스톱 서비스 등을 기치로 내걸고 있다. 각기 다른 듯 같은 진료시스템이다.
때문에 모든 암병원이 특색 없이 운영되기 보다 고유의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가령 ‘00암병원은 00암’이라는 인식이 통용될 정도로 특성화된 강점을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천재희 교수는 “각 암병원마다 특성화된 강점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병원과 보완하는 시스템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진료에 편중돼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연구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의 MD앤더슨 암센터, 존스홉킨스 암센터, 하버드대학 다나파버 암센터, 메모리얼 슬로언케터링 암센터, 메이요 클리닉, 듀크대학 암병원 등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는 곳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 이들 암병원은 진단 및 치료에만 집중하지 않고 기초적인 암 연구는 물론 민간요법을 응용한 암예방, 환자 심리 및 암 이환에 따른 사회문제까지 포괄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가천대학교 의과대학 함기백 교수는 “우리나라 의사는 물론 환자들도 암진료와 연구는 별개라고 생각한다”며 “너무 바쁜 진료로 연구를 등한시 해서는 세계적 암병원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암병원 소속 교수들도 연구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현실과의 괴리가 너무 크다고 쓴소리를 던졌다. E대학병원 교수는 “암병원이 들어설 때 교수들은 암연구를 좀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 아니냐는 순진한 생각을 했었다”며 “하지만 실상은 너무 달랐다”고 말했다.
F대학병원 교수 역시 “암병원 개원 후 교수들의 진료 부담이 엄청나게 가중됐다. 연구를 더 할 수 있는게 아니라 진료를 더 많이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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