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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규약에 위축된 학회…‘별도법인’ 설립 고심
리베이트 쌍벌제 등 여파, 순수 학술활동마저 어려움 가중
[ 2015년 01월 05일 12시 23분 ]

[기획 3]바빠진 학회의 발걸음을 담기에 기존 학회 울타리는 너무 제한이 많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좁아졌다. 지난 2009년 말 발표되고 2010년 4월부터 적용된 공정거래위원회의 의약품 거래에 관한 공정경쟁규약과 이후 시행된 리베이트 쌍벌제는 학회의 허리띠를 바짝 조이게 했다.


대부분의 국내·외 학술대회가 규약 적용 1년만에 휘청거렸다. 학회의 사명인 연구 활동까지 위축될 것이란 위기감이 피부에 와닿자 독야청청하던 학회들도 하나 둘씩 활로를 찾기 시작했고, 그 대책이 바로 법인 설립이었다.

 

26개학회, 법인 설립…2010년 이후 창립 모두 재단법인

 

현재 법인은 학회 회원을 구성원으로 하는 사단법인과 산하에 별도 재단법인을 설립하는 형태가 있다. 학회들은 의사결정 구조가 복잡한 사단법인보다는 일정 금액 이상을 출연해 설립하는 재단법인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사단법인의 경우 5000만원, 재단법인은 7억원 정도의 자본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학회에서는 학회 자본금 출연으로 이같은 비용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의학회 자료를 기반으로 데일리메디가 2013년 법인 설립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의학회 산하 총 158개 학회 중 26개가 법인을 설립했다.[표]

 


그 중 사단법인은 8개이고 나머지는 재단법인이다. 2010년 이후 설립된 법인은 모두 재단법인이라는 특징이 있다. 또한 재단법인 총 18개 중 절반인 9개가 2009년 이후 설립돼 이 시기 재단법인 설립이 집중적으로 이뤄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법인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법인 성격에 따라 정부 부처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한다. 대한내과학회·대한소아과학회 등 대부분의 학회는 보건복지부로부터, 대한면역학회·대한노인병학회 등 6개 학회는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한국항공우주의학회는 국토해양부로부터 승인을 취득했다.


한국망막학회의 경우 대전시교육청으로부터 승인을 받았는데, 일정 지역에서만 활동할 경우 정부는 지자체에 설립 승인권을 주고 있다.


대한의학회 산하 학회들의 법인 설립은 2010년 이후 급격히 증가했다. 같은 해 4월부터 적용된 공정경쟁규약과 그 이후 시행된 리베이트 쌍벌제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은 일이 잦아진 탓이다.


공정경쟁규약 등은 학회에 큰 부담이 됐는데, 대표적인 예가 국내 학술대회 개최 시 의학회 자부담 비중을 20%로 높인 것이다.


기존 10% 미만에 머물던 자부담 비용을 올려 제약사 지원에 의존했던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였다. 2015년부터는 자부담율이 30%로 상승할 예정이어서 학회가 짊어져야 할 무게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학술대회 기부금을 학회 직원 인건비와 운영비로 사용할 수 없고, 학술대회 잉여금은 자부담 비중과 상관 없이 모두 반환해야 한다. 제약사가 학회와 손잡고 벌이는 캠페인 역시 건당 5000만원 이하로 한정돼 있는 등 예산 운용에 있어 제약이 많다.


이 기준에 맞추기 위해 학회들은 일제히 긴축경영에 돌입했다. 학술대회 해외연자 수를 줄이거나 다른 학회와 공동으로 초청했다.

 

2011년 노성훈 당시 대한암학회 이사장(세브란스병원)은 “지난해에 비해 초청연자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며 “한국 의사들의 해외연수 기회가 많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해외 학자들과의 교류가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토로한 바 있다.


이건국 대한병리학회 총무이사 역시 같은 해 학술대회 직후 “연자 공동 초청은 이례적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특히 기초학문을 하는 병리학회의 경우에는 지원 자체도 적어 더욱 힘든 게 사실”이라며 “다음부터는 대학 강당을 빌려 하는 것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판”이라고 어려운 현실을 털어놨다.

 

학술대회 등록비 인상 등 재정 확충 비상

 

학회의 재정확충 역시 절실해졌다. 이를 위해 학술대회 등록비를 인상하고 제약사에 부스 설치비와는 별도로 대회 참가비를 받았다.


실제 지난 2011년 대한암학회는 춘계학술대회 등록비를 4만원에서 7만원으로 대폭 인상했다.

 

회원 수가 많아 큰 규모를 자랑하는 학회 중 하나인 심장학회의 경우 전문의 및 교수 3만원, 전공의 및 기타 1만원이었던 등록비를 각각 6만원, 4만원으로 올렸다.

 

대한당뇨병학회 역시 많게는 2.5배까지 등록비 인상을 결정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대한민국 의학 수준의 비약적 성장을 견인한 학회 자존심은 뭉개졌다.

 

김동구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작성한 ‘의료계에서 바라본 공정경쟁규약’에서 “제약사 간 공정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제정된 법안은 그 본래 목적과는 다르게 의료계 활동을 제한하고 임의로 규정한 한도를 넘으면 부도덕한 수준이라고 규정했다”며 “마치 의료계가 부도덕한 수준의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오도되고 있는 형편”이라고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각 학회별 법인 설립 ‘명암’

 

법인 설립은 학회가 숨통을 틀 수 있는 피난처가 됐다. 학회 자체가 법인화되거나 별도 법인을 설립하면 기획재정부 지정기부처 등록을 통해 출연이나 기부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것이다.


제약사 등 이해관계가 있는 주체에게는 여전히 받을 수 없지만, 사회단체나 개인에게 기부금을 받을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재정확보에 도움이 된다. 한 학회 관계자는 “법인 설립 목적은 기부금 유치가 전부다”라고 설명할 정도다.


기부자 역시 세금공제를 받고 법인의 경우 재무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 역시 장점이다. 그는 “일정 규모 이상의 의원이나 병원을 운영하는 개원의들은 학회에 도움을 주면서 세제혜택을 받기 위해 기부를 한다”며 “기부가 하나의 절세 전략인 셈”이라고 소개했다.


학회는 탄탄해진 재정적 뒷받침을 기반으로 다양한 사업을 벌이며 활동 영역을 다각화해 나갔다. 재정 분리를 통한 학회 발전을 위해 대한비뇨기과학재단을 설립한 대한비뇨기과학회는 학술, 교육 및 연구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비뇨기질환과 더불어 비뇨기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도 진행한다.


한국망막학회가 설립한 망막학 발전재단은 망막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 지급 및 학술연구비 지원사업 등을 목적으로 운영된다. 진단검사의학회의 내실화에 기여하고 있는 진단검사의학재단은 검사실 신임인증, 수반되는 질향상 사업, 표준화 사업 등이 추진된다.


피부과학회의 피부과학연구재단 설립은 공경경쟁규약 등이 제약사의 학술지원 활동을 제한해 원활한 추계학술대회 개최가 위축될 것으로 우려하는 목소리가 일자 추진됐다.


특히 2011년 서울 세계피부과학술대회 준비에 차질을 빚을 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설립을 서둘렀다는 전언이다.


그 결과 이광훈 전 이사장(연세의대)은 지난 2011년 열린 ‘제63차 추계학술대회 정기총회’에서 “취임 직후 공정경쟁규약에 따른 상황 변화로 어려움이 컸다”며 “학회가 법인을 설립해 이 같은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응급의학회는 응급의학 분야의 학술, 교육, 연구 및 제도의 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응급의학연구재단을 설립했다. 재단은 응급의학에 관한 연구지원 및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응급의학에 관한 국내외의 정보 교환 및 지식교류에 관한 사업을 추진한다.

 

이와 함께 응급의학 발전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관련 의료제도 연구는 물론 정책개발 사업에도 초점이 맞춰졌다.


물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법인 전환에 따른 규제 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우선, 민법상 재단법인 또는 사단법인은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만큼 수익을 추구할 수 없다. 자체 수입원이 없는 학회가 제약이나 의료기기 등 관련 업체의 후원에 기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학회의 자립도를 높여나가지 않으면 법인화를 통해 기부금을 받는다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공익재단이기 때문에 투명한 회계처리를 위해 외부감사를 받아야 한다는 점도 학회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또한 법인 설립이 이뤄지면 승인을 받은 정부 부처로부터 3년마다 한번 씩 종합감사를 받고 매년 사업계획과 사업 실적보고도 해야 한다. 관리감독 기관인 정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복지부 “향후 보다 엄격하게 승인 심사”

 

사실, 설립 과정도 쉽지만은 않다. 학회 재정 건전성과 더불어 향후 사업계획 등을 세우기까지 학회 내 의견을 모으고 승인 기관을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해 난관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


실제 대한간학회는 몇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한국간재단을 설립하고 운영에 들어갔을 정도로 법인 설립까지 험난했다. 당시 법인 설립을 추진했던 한 관계자는 “추상적인 비전만 가지고 재단을 설립하는 것은 어렵다”며 “분명한 목표와 구체적인 사업계획, 실행전략을 제시해야 한다”고 전했다.


특히 현재 보건복지부 등은 학회의 법인 설립에 우호적이지 않아 향후 준비 과정은 더욱 까다로울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는 학회가 법인을 설립하면 한국의학회와 동등한 위치를 갖게돼 한국의학회 산하 학회로서 체계상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또한 보건복지부가 법인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늘어나는 업무량도 부담스러워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학회의 법인 설립은 의학회 체계상 어긋나고 보건복지부가 관리·감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업무량이 많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는 정부 차원에서 보다 엄격하게 승인 심사를 해 꼭 필요한 법인만 설립을 승인할 것이다”고 밝혔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송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민정혜기자 mjh_nuit@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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