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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의원 현실과 동떨어진 '환자안전법'
醫, 하위법령 전면수정 요구···"시행안 적용 어려워" 불만 비등
[ 2016년 03월 23일 06시 52분 ]

"사람 몸에 맞는 옷이 아닌 만들어진 옷에 몸을 맞춰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 같아 우려된다."
 

환자안전법 하위법령안 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상일 한국의료질향상학회 부회장의 첫 마디다. 그리고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바라본 의료계 및 학계 전문가들의 심정이기도 하다.


최근 의료질향상학회와 대한병원협회가 공동주최한 '환자안전법 하위법령 제정 토론회' 참석자들은 현재의 입법예고 내용만으로는 오는 7월 29일 예정된 시행일을 맞출 수 없다고 지적했다.


복지부조차 "법령을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며 의견수렴을 통한 수정 및 개선을 시사했다. 이번 토론회에서 논의된 내용을 중심으로 향후 환자안전법의 제도화 방향을 살펴봤다.
 


환자안전, 원점서 재논의돼야


복지부는 안전사고 공개에 대한 의료기관의 소극적인 자세와 사고 책임의 규명이 어렵다는 점 등을 이유로 법 제정을 통해 환자안전을 확보해야 한다고 피력해왔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환자안전법과 하위법령은 오히려 그 취지에서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안전문제가 발생할 경우, 의료인의 자발적 보고와 환자에 대한 안전 확보 노력이 위축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상일 부회장[사진]은 "전문가들 의견조차 크게 반영되지 않았다. 누구를 위한 법인지 의문이 들 정도"라며 법에서 정한 환자안전사고의 정의부터 의료인에 대한 인식, 법체계와 구조 등 환자안전 확보를 저해할 문제들을 하나하나 지목했다.

 


먼저 그는 "자문위원회에서 개념을 명확히 하기 위해 제시한 '기저질환과 관련이 없는'이라는 수식어도 제외됐다"며 "기저질환 혹은 외부요인에 의한 사고 가능성이 있음에도 마치 의료인이 환자에게 위해를 가하는 존재로 인식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안전 사고에 대한 자율보고를 적극적이고 활발히 하는 기관일수록 환자안전 확보가 잘 이뤄지는 곳임에도 처벌이 이뤄지고 부정적인 인식이 형성된다면 기존의 활동마저 위축시킬 것"이라며 법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문제를 짚었다.


병원계 입장을 전하기 위해 토론회에 참석한 이왕준 대한병원협회 정책이사 또한 이 부회장과 뜻을 같이 했다.


이왕준 이사는 먼저 "환자안전법 논의 당시에는 의료계 전반에서 제도 필요성과 당위성, 의료시스템 선진화 차원에서 공감대를 갖고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명칭부터 평가와 감시, 규제가 있을 수 있다는 분위기"라고 우려를 표했다.
 

"임상현장에서 자율성에 근거 사건 보고 등 이뤄져야"


이 이사는 또한 "환자안전법은 정확히 환자안전에 관한 교육 및 보고에 관한 법"이라며 "의료사고를 방지하고 환자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임상현장에서 자율성에 근거해 사건을 보고하고 바로잡으려는 시도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환자안전법 및 하위법령 중에서 일련의 보고·학습시스템을 가장 시급히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상일 부회장과 이왕준 이사를 비롯해 김문숙 한국QI간호사회 부회장, 김은석 순천향대 천안병원 前 QI실장(방사선종양학과 교수) 등이 “보고・학습시스템 위탁기관으로 시행령에 거론된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제외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 기관이 규제와 규명, 평가, 통제적 성격이 강해 환자안전사고를 바라보는 시각이 편중되고 자율보고체계의 활성화를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본 것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의료기관인증평가원으로 위탁운영을 추진하거나, 별도 예산을 확보하기 어려울 경우 질병관리본부가 운영 중인 '공중보건위기대응사업단'과 같은 독립기구를 설치해 예산 편성시 용이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일련의 환자안전에 관한 사항을 관장할 환자안전위원회 기능을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분쟁조정에 관한 법률 상 '의료사고예방위원회'와 단일화해서 중복을 피하고, 구성위원의 전문가 비율을 높이는 방안도 나왔다.


무엇보다 환자안전지표를 명확히 하고 현실성을 높이며, 상세하게 명시해 의료기관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하고, 개인정보보호와 비밀유지 강화하는 등 체계적인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대해 김은석 前 실장은 "환자안전법의 기본 구동원칙은 자율보고와 전문적인 교육"이라며 "정서상 내부적으로도 환자안전사건에 대해 쉬쉬하는데 국가차원의 자율보고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보고체계 정비와 비밀보장, 현장실정에 맞춘 교육 및 훈련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환자안전, 법은 있고 돈은 없는 복지부


이 외에도 전담인력 자격 및 역할, 환자안전관련 자료 제출요구의 주체 및 요건, 요양병원 등 200병상 이하 의료기관의 환자안전관리 등에 대한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정부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지적과 제안들을 실행하려면 결국 재정이 투입돼야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법 제정에 따라 운영해야 할 환자안전위원회나 환자안전보고 및 관리체계 마련 등의 예산 배정조차 일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요양기관들의 전담인력 확보 및 자료제출 등을 위한 행정적 부담을 정부가 지원해 줄 리도 만무하다.


이상일 부회장은 "환자안전이라는 체계를 도입, 운영하기 위해서는 일선 요양기관의 임상현장부터 의료기관, 환자, 정부가 끊임없이 노력하고 협력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기본적인 운영예산조차 편성하지 않고 있다"면서 "지원은커녕 자체운영도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여기에 이 부회장은 잘못 나온 싹을 뽑아 다른 싹들이 잘 자라도록 돕는다는 것이 모든 싹을 없애버릴 수도 있다는 '알묘조장'이란 사자성어를 인용하면서 "정부가 나쁜 의도와 목적은 아니겠지만 모든 싹을 잘라버릴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정영훈 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장은 "7월 29일 법 시행 전 사전준비를 마쳐야 해 시일이 촉박하다"면서도 "의료사고 발생 시 이를 보고하고 자료를 검증해 분석한 후 교육에 활용하는 일련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가장 중요한 것은 의료기관 내 사고가 발생했을 때 내부에서 이를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고 처리 결과물에 대해 공유, 보고, 교육이 이뤄질 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지만 정부의 전담인력 및 행정적 비용지원에 대해서는 "시민사회와의 상충되는 부분이 있어 논의가 필요하다"면서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정 과장은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다. 시행 전까지 다양한 의견을 듣고 현실과 이상의 접점을 찾아 해당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며 개선 가능성의 여지는 남겨뒀다.

오준엽기자 oz@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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