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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전문의 양성체계 혁신 시급”
김철중 조선일보 논설위원
[ 2016년 04월 11일 07시 00분 ]
성형외과·피부과 등 미용 의료 클리닉이 밀집한 서울 강남 일대를 지나다 보면 서울대 마크가 곳곳에서 눈에 띈다. 그만큼 서울대 의대 출신 의사가 많이 개업하고 있다는 뜻이다.
서울대 마크에 박힌 ‘진리는 나의 빛(VERITAS LUX MEA)’이라는 라틴어 글귀는 강남 미용 성형 분야에서도 빛을 내고 있다. 일본 도쿄 시내 어디를 가도 도쿄대 마크를 큼지막하게 걸어 놓은 미용 클리닉을 본 적이 없다.
미국 뉴욕 중심가 뷰티 타운에도 하버드대 간판을 단 클리닉이 이렇게 많지 않다. 유독 우리나라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명문대 마크가 미용의료 시장에서 성공을 도모하는 상징으로 대거 사용된다.
서울대는 국내 최고 국립대학이다. 학생 등록금은 사립대보다 싸고, 교수 월급과 병원 설립에 정부 예산이 들어간다. 일정 부분 공적 자금이 쓰여 의사와 전문의가 양성된다는 뜻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강남에서 잘나가는 성형외과·피부과 원장을 키우기 위해 내 세금이 쓰인 셈이다.
요즘 전공의(레지던트) 지원 현황을 보면 의대 성적이 우수한 젊은 의사들이 수년째 성형·피부·안과 등에 몰렸다. 십수 년째 변화가 없다.
국립대와 사립대 의대를 가리지 않는 이런 현상은 분야별 전문의 양성을 시장경제에 맡겨 놓고, 전공의 정원도 병원과 해당 학회의 수요에 따라 결정되는 탓이다. 전공의 수련 과정은 임상 기술 교육 위주로 채워져 있고, 의료 전문가로서 사회를 이끌 리더십 교육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니 젊은 의사들은 전문의 자격을 딴 뒤에 받을 월급 액수와 개업 자리만 따지게 되고, 병원은 당장 값싼 노동력을 활용할 생각뿐이다.물론 메디컬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치료 주체를 바꾼다.
요즘 흉부외과는 지원자 정원을 채우기도 급급하지만, 흉부외과 의사도 한때는 의료계 인기 직종이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심장에 영양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동맥경화로 좁아진 협심증 환자 치료는 흉부외과 의사가 도맡았다. 병든 관상동맥을 새 혈관으로 갈아치우는 심장 수술이 주된 치료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좁아진 관상동맥을 간편한 내과 시술로 넓혀주는 스텐트가 나오면서 흉부외과 의사의 일감이 대폭 줄었다. 인구 고령화는 의료 수요에 큰 변화를 미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여전히 그와 어울리지 않는 전문의 배출 시스템을 운영한다. 집집이 진료 의사를 지정하는 주치의 제도는 없으면서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매년 300명씩 나온다.
한 해 나오는 전체 전문의 가운데 약 10%로, 내과 다음으로 많다. 그만큼 전공의 숫자도 많다.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흔히 접하는 질병을 통합적으로 진료하는 1차 의사다. 질병 예방과 건강 증진에 힘쓰는 가족 주치의다. 지역사회에 기반을 둔 그런 의사를 배출하겠다며 1980년에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출범했다. 과연 이 목적에 부합했을까.
2014년 대한의사협회 조사로는 개업한 가정의학과 전문의 5878명 중 75%가 서울·부산 등 6개 대도시와 경기도에 있다. 이는 내과 전문의(76%) 분포와 같다. 수도권과 대도시에 몰려 있는 것에 차이가 없다.
서울에 있는 가정의학과 전문의 중 강남구 소속 비율이 17%다. 성형외과·피부과 등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위주 전문 과목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가정의학과 전문의 상당수가 미용과 비만 의료에 종사한다고 볼 수 있다. 보건소에 근무하는 이는 2%다. 상황이 이럴진대, 왜 한국 사회가 소중한 의료 인력을 그렇게나 많이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키워야 하는지 와 닿지 않는다.
"정부 지원금 등 공적 지원 늘리고 국민건강에 필요한 전문의 배출해야"
반면 인구구조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는데 노인의학 전문의 제도가 없다. 우리는 이미 65세 이상 인구가 13%를 넘어섰다. 7명 중 1명이 노인인데,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만 있고, 노인의학 전문의는 없다. 의학적으로 소아는 어른의 축소판이 아니다.
체중당 약물의 용량으로 치면 아이들은 성인에 비해 엄청나게 높은 농도의 약을 먹는다. 아기들에게는 체중 ㎏ 단위로 약 처방이 달라진다.
질병에 대한 신체 반응이 빨라서 반나절 만에 나빠지거나 하루 만에 좋아지기도 한다. 이런 생리를 알아야 하기에 소아과 전문의가 있다.
노인도 고유의 특성이 일반 성인과 완연히 다르다. 단백질 생산량이 줄어서 면역반응이 더디다. 폐렴이 와도 열이 별로 나지 않아 진단이 늦어지기 쉽다. 충수염(맹장염)에 걸려도 통증이 적어 오진이 잦다.
만성질환으로 먹는 약물이 여러 개여서 약 하나 잘못 쓰면 서로 충돌해 사달이 난다. 단순 엉덩뼈 골절이 심장·뇌·신장 등 여러 기관에 영향을 미치는 질병 취약 신체다.
그렇기에 선진국들은 노인 인구가 7%를 넘어섰던 1980년대부터 노인의학 세부 전문의를 만들고 의료인력을 키웠다.
한 해 건강보험 진료비의36%인 약 20조원이 65세 이상 노인 인구에게 들어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노인에 대한 적절한 의료 행위가 이뤄지지 못해서 손실되는 재정 규모가 상당할 것으로 추산된다. 돈 쓰고도 건강 유지에 실패하는 경우다.
의료 인력의 근간인 전문의 양성 체계는 그 시대의 인구와 질병 구조, 진료 환경에 맞추어 거듭나야 한다. 당장은 노인의학 전문의를 대거 양성하는 것이 시급하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비뇨기과 전문의가 급속히 감소하는 상황을 방치하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
지난 2011년부터 비뇨기과 전공의(레지던트) 지원율은 절반으로 떨어지더니, 추락을 거듭해 올해는 20%대로 급락했다. 전국 병원 82명 정원에 24명만 지원했다. 각 시도에 두 명꼴이다. 지방은 거의 전멸이다.
비뇨기과는 성병 치료나 발기부전 치료제 처방을 위주로 하는 곳이 아니다. 전립선암·신장암·방광암·고환암 등은 물론, 요로결석과 요실금 치료를 맡고 있다. 죄다 고령 사회로 갈수록 늘어나는 질병이다.
이제 전문의 양성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때가 됐다. 지금 체계는 1980년대 형성된 것이다. 인구와 질병과 사회적 수요가 모두 바뀌었다. 과거 판을 놓고 젊은 의사들이 기피한다고 혀만 찰 일이 아니다.
선진국들은 전문의 양성을 이렇게 하지 않는다. 분야별 전문의는 사회의 주요 공적 자산이라는 인식 아래 정부가 지원하여 키운다.
미국은 전공의 월급을 연방정부 건강보험 재정에서 주고, 영국은 국가 건강보험 체계에서 댄다. 일본도 초임 의사의 2년 월급을 정부가 지원한다. 이를 통해 전문의 교육 질을 높이고 전략적으로 사회에 필요한 전문의를 관리한다.
의학 발전과 인구 변화에 따른 전문의 수요를 장기적 틀에서 만들어 간다. 힘들고 고된 외과 수련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공적 자금을 들여 건실한 외과 의사를 키운다.
우리보다 의학 수준이 못하다고 하는 중국과 태국도 최근 이런 공적 지원 전문의 양성 체계를 도입했다. 관행상 우리나라는 의사의 약 90%가 전문의가 된다. 요즘 대학입시 지원 배치표를 보면 이과 상위는 죄다 의대다.
그런 인재들이 의대에 들어와서 장기적 계획과 중요성, 필요성에 의하지 않고 그저 시류에 민감한 전문의로만 키워진다면 국가적으로 큰 손해다.
생명 치료와 직결된 필수 의학 분야와 고령 사회에 수요가 급증할 분야만큼은 의료 수가를 대폭 개선하고 공적 지원을 늘려서 우수한 인재들이 그 분야에 몸담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여기에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가 달렸다.
데일리메디 dailymedi@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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